북한이탈주민의 날 국가기념일 제정 7월 14일
2025년 7월 14일, 우리는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북한이탈주민의 날’을 맞이합니다. 2024년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이 날은 단순히 달력에 추가된 하루가 아닙니다. 자유를 향한 험난한 여정을 거쳐 대한민국의 품에 안긴 약 3만 4천여 명의 북한이탈주민들을 따뜻하게 포용하고, 이들이 우리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국가적 약속의 상징입니다. 이 기념일은 우리에게 ‘먼저 온 통일’이라 불리는 북한이탈주민의 존재 의미를 되새기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향한 실질적인 준비가 무엇인지 성찰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매년 7월 14일은 북한이탈주민의 인권과 안정적인 정착 지원을 위한 법적 기틀이 마련된 역사적인 날을 기념합니다. 바로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 지원에 관한 법률', 약칭 북한이탈주민법이 1997년 7월 14일 처음 시행된 날입니다. 이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한 것은,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지원이 시혜적인 조치를 넘어 국가의 법적, 제도적 책무임을 명확히 하고, 우리 사회 전체가 이들의 아픔을 보듬고 희망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을 고취하기 위함입니다. 국가기념일 제정을 통해 우리는 이들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이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가지며, 성공적인 정착 사례를 널리 알려 긍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키는 중요한 발판을 마련한 것입니다.
이는 일회성 행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탈주민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분기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과거의 정책이 초기 정착과 생계 지원에 집중되었다면, 이제는 심리적 안정, 사회적 관계망 형성, 경제적 자립 역량 강화 등 다차원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의 통합 지원으로 나아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북한이탈주민의 날'은 바로 이러한 정책적 방향성을 국민에게 알리고, 민관 협력을 강화하며, 실질적인 지원 체계를 더욱 공고히 구축해 나가는 구심점 역할을 수행할 것입니다.
북한이탈주민법의 제정과 그 역사적 의의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 지원에 관한 법률'은 군사분계선 이북 지역을 벗어나 대한민국의 보호를 받고자 하는 주민들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고, 이들이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신속히 적응하고 정착하는 데 필요한 보호와 지원을 규정한 핵심 법률입니다. 이 법에 따라 '북한이탈주민'은 북한에 주소, 직계가족, 배우자 등을 둔 사람으로서 북한을 벗어난 후 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아니한 사람으로 명확히 정의됩니다. 이는 이들이 단순한 난민이나 외국인이 아닌,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권리와 보호를 받아야 할 대상임을 천명하는 것입니다.
이 법률의 제정 배경에는 탈북민의 양적 증가와 구성의 다변화라는 시대적 상황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1993년 이전까지 연평균 10명 내외에 불과했던 탈북민 수는 1994년 북한의 극심한 식량난,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기점으로 급증하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대 후반에는 한 해 입국 인원이 2,900명을 넘어서기도 했습니다. 또한, 과거 군인이나 외교관 등 특수계층 위주였던 탈북 양상은 점차 일반 주민, 노동자, 여성, 아동 등 사회 전 계층으로 확대되었습니다. 단신 탈북에서 가족 단위의 동반 탈북, 집단 탈북으로 형태가 다양화되었고, 군사분계선을 넘는 방식 외에 제3국을 경유하는 경로가 보편화되는 등 복잡하고 위험한 여정을 거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이들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보호 및 지원 시스템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물이 바로 1997년의 북한이탈주민법이었습니다.
법률 제정은 북한이탈주민 정책의 근간을 세웠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인 사건입니다. 이전까지 귀순 용사나 특정 인물에 대한 개별적 보상 차원에 머물렀던 지원 방식에서 벗어나, 모든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지원 체계의 기틀을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초기 정착금 지원, 주거 알선, 의료 지원, 직업 훈련, 자녀 교육 지원 등 구체적인 지원책을 법제화함으로써 이들이 남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안전망을 제공했습니다. 이 법률이 없었다면, 수많은 북한이탈주민이 낯선 사회에서 방향을 잃고 극심한 혼란과 빈곤에 시달렸을지 모릅니다. 법적 근거의 마련은 이들을 단순한 동정의 대상이 아닌, 우리 사회가 책임지고 함께 가야 할 동반자로 인식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통합의 과제: 북한이탈주민이 마주한 현실
법적, 제도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북한이탈주민이 대한민국 사회에 완전히 뿌리내리는 과정은 여전히 녹록지 않습니다. 이들은 언어와 문화의 이질감,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생소함, 치열한 경쟁 사회의 압박감 등 복합적인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특히, 보이지 않는 사회적 편견과 차별은 이들이 겪는 가장 큰 심리적 장벽으로 작용합니다. 2023년 남북하나재단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의 고용률은 54.9%로 전체 국민 고용률(62.6%)에 비해 여전히 낮은 수준이며, 월평균 임금 또한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이들의 경제적 자립을 가로막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신적, 심리적 문제입니다. 탈북 과정에서 겪은 생명의 위협과 인권 유린의 트라우마, 북에 남겨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 등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나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의 약 20~30%가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심리적 고통은 사회 적응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전문적인 심리 상담과 정신 건강 지원 체계를 대폭 강화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입니다.
사회적 관계망의 부재 또한 이들을 고립시키는 주된 요인입니다. 연고가 없는 남한 사회에서 이웃과 동료, 지역사회와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일부의 왜곡된 시선이나 무관심은 이들을 더욱 위축시키고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하게 만듭니다. '북한이탈주민의 날' 제정은 바로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출발점입니다. 이 날을 계기로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점검하고, 이들이 단순한 지원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이자 친구, 동료임을 받아들이는 문화가 확산되어야 합니다. 지역사회 단위의 멘토링 프로그램, 문화 교류 행사, 자조 모임 활성화 등 이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마련하는 실질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먼저 온 통일'에서 '함께 만드는 통일'로
'북한이탈주민의 날'은 과거를 기념하는 것을 넘어, 미래를 준비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북한이탈주민은 단순히 북한 체제를 벗어난 사람들이 아니라, 남북한의 이질적인 사회와 문화를 온몸으로 겪으며 두 체제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소중한 인적 자산입니다. 이들은 '살아있는 통일 교과서'이며, 우리가 미래에 마주할 통일 과정의 축소판을 미리 경험하게 해주는 '먼저 온 미래'입니다. 이들의 성공적인 정착은 그 자체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동시에, 미래 통일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회 통합의 비용과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귀중한 경험 자산을 축적하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정부와 우리 사회는 북한이탈주민을 단순한 보호와 지원의 대상을 넘어, 통일 미래를 함께 설계하고 만들어가는 주체적인 파트너로 인식해야 합니다. 이들의 경험과 지식, 북한 사회에 대한 이해는 향후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남북 교류 협력을 추진하는 데 있어 그 어떤 전문가의 분석보다 값진 자원이 될 수 있습니다. 북한이탈주민 출신 전문가를 정책 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고, 이들이 사회 각계각층에서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북한이탈주민의 날'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개최되는 기념식과 문화 행사는 이러한 인식 전환을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북한이탈주민과 지역 주민이 함께 어울려 소통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자리를 통해 막연한 편견의 벽을 허물고, 이들이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산임을 체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이 기념일이 지향해야 할 목표는, 언젠가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용어 자체가 필요 없어지는 진정한 사회 통합의 시대를 여는 것입니다. 이들이 더 이상 특별한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그저 '우리'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아가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북한이탈주민의 날'이 품고 있는 진정한 의미이자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입니다. 2025년 7월 14일, 우리 모두가 이 의미를 다시 한번 깊이 새기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